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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한 컵이 나오기까지 몇 단계를 거치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6~7년 전 가을, 서울 아리수 정수센터에서 하루짜리 알바를 했습니다. 기계실에서 버튼 몇 개 누르는 일을 상상하고 갔는데, 손에 쥐어진 건 삽과 빗자루였습니다. 그날 이후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그 빗자루 횟수가 먼저 떠오릅니다.

응집·침전 공정,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갑니다
정수 처리는 크게 응집, 침전, 여과 세 단계로 나뉩니다. 응집지(凝集池)란 원수에 응집제를 섞어 미세한 오염 입자들을 서로 달라붙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들을 뭉쳐서 가라앉히기 쉬운 덩어리로 만드는 단계입니다.
저는 이 응집지 바닥 청소를 첫 업무로 받았습니다. 물을 빼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공간에 내려가는데, 위에서 볼 때는 제법 깨끗해 보였습니다. 막상 내려가니 달랐습니다. 가을 낙엽 한 장, 검은 가루 한 줌까지 전부 손으로 제거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청소 도구가 빗자루와 물이 전부였거든요.
세제를 쓰면 빠를 텐데, 그게 안 됩니다. 사람이 마시는 물을 생산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어떤 화학 세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기준에 따르면 정수 공정 내 세척은 반드시 물리적 방식으로만 진행해야 합니다(출처: 서울시 아리수). 그래서 바닥을 밀고, 또 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는 노가다가 됩니다.
응집지 바닥에는 활성탄(activated carbon) 찌꺼기도 쌓여 있었습니다. 활성탄이란 표면에 수많은 미세 구멍이 있는 숯 계열 물질로, 물속의 냄새와 맛을 잡아주는 필터 역할을 합니다. 커피 필터가 쓴맛을 거르듯, 활성탄은 수돗물 특유의 냄새를 흡착해 제거합니다. 그 검은 가루를 한쪽으로 모아 쓸어내는 작업이 생각보다 꽤 걸렸습니다.
- 응집지: 응집제를 섞어 오염 입자를 덩어리로 뭉치는 공간
- 침전지(沈澱池): 덩어리진 이물질이 바닥으로 가라앉도록 기다리는 공간
- 활성탄: 냄새·맛 성분을 흡착 제거하는 숯 계열 필터 물질
- 세제 사용 불가: 음용수 생산 시설 특성상 물리적 청소만 허용
여과모래 층 관리, 파면 파는 만큼 다시 무너집니다
오후에는 여과지(濾過池)로 이동했습니다. 여과지란 모래 층을 통과시켜 침전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은 미세 입자를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공간입니다. 모래 사이사이의 틈새가 필터 역할을 하는 구조입니다. 국내 정수장에서 사용하는 여과 모래층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60~90cm 수준으로 관리됩니다(출처: 환경부).
제가 맡은 작업은 이 모래를 일정 깊이까지 파낸 뒤 상태를 측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50cm쯤 파들어가면 옆 모래가 스르르 흘러들어와 구멍을 메워버립니다. 다시 팝니다. 또 무너집니다. 이 반복이 체력보다 정신을 먼저 소모시켰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작업이 하루 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측정 기준인 80~90cm 깊이에 도달하려면 무너지는 모래를 이겨내며 빠르게 파야 하는데, 삽이 벽면에 걸리거나 발이 모래 속으로 빠지는 일이 계속 생겼습니다. 직원 한 분이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인데 오늘 제일 더러워지는 건 우리예요"라고 말했을 때, 다들 웃으면서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여과지 청소 후에는 역세척(back washing) 과정이 따릅니다. 역세척이란 여과 방향과 반대로 물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 모래 사이에 쌓인 오염물을 씻어내는 공정입니다. 이 과정 없이는 모래가 막혀 여과 효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제가 파낸 모래는 바로 이 역세척 효율을 점검하기 위한 샘플이었던 셈입니다.
활성탄과 수돗물, '당연한 깨끗함'이 아닙니다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무심코 물 한 잔을 따랐습니다. 맛은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투명한 한 컵을 보며 이상하게 감사함 같은 게 올라왔습니다. 제가 밀었던 빗자루 횟수, 무너지던 모래, 세제도 못 쓰고 빡빡하게 닦아내던 바닥이 전부 그 컵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수 처리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파이프에서 맛있는 물이 나오거나 수질 사고가 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성공 지표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남'인 직종은 그 수고로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리수(서울시 수돗물)의 수질 항목은 법정 기준 60개를 넘어 총 163개 항목을 자체 검사 기준으로 관리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먹는물 수질 가이드라인 항목보다도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 숫자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수질 기준 하나하나 뒤에는 응집지 바닥을 밀던 사람, 여과지 모래를 파던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물 관련 국제 지표에서 수자원 부족 국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상수도 수질 관리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결과가 유지되는 건 정수센터가 시설만 잘 갖춰서가 아니라, 매일 누군가 소리 없이 그 시설을 청소하고 점검하기 때문입니다. 활성탄 교체 주기 관리, 역세척 주기 점검, 응집제 투입량 조절 같은 일들이 매일 반복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돗물 그냥 마셔도 됩니까?
A. 서울 아리수 기준으로 총 163개 자체 수질 항목을 통과한 물입니다. WHO 먹는물 수질 가이드라인 기준도 충족하며, 정수 처리 단계(응집→침전→여과→소독)를 모두 거친 상태라 바로 음용이 가능합니다. 오래된 건물 내부 배관 상태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수돗물 자체의 수질은 문제없는 수준입니다.
Q. 활성탄 필터는 정수기에만 있는 겁니까?
A. 아닙니다. 정수장 자체에서도 활성탄 공정을 운영합니다. 응집지나 여과지 단계에서 활성탄을 투입하거나 활성탄 흡착지를 별도로 운영하여 냄새·맛 성분을 제거합니다. 정수기의 활성탄 필터는 이 정수장 공정 이후 배관을 거쳐 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잔류 냄새를 한 번 더 잡아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Q. 여과지 모래는 얼마나 자주 교체합니까?
A. 모래를 전량 교체하는 주기는 수십 년 단위이지만, 매일 역세척을 통해 모래 층을 세척하고 주기적으로 샘플을 채취해 여과 성능을 점검합니다. 모래 입자 크기나 층 두께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부분 보충 또는 교체를 진행합니다. 제가 직접 샘플 채취 작업을 해봤는데, 이 점검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Q. 정수센터 청소에 세제를 못 쓰면 어떻게 청소합니까?
A. 물리적 방법만 사용합니다. 빗자루로 쓸어 모으고, 고압수로 씻어내고, 삽으로 퍼내는 방식입니다. 음용수 생산 시설 특성상 어떤 화학 세제도 공정 내에 유입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건물 청소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갑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작업이라고 봤는데, 실제로 해보니 가장 고되고 정교한 작업이었습니다.
결론
정수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깨달은 건, 깨끗함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가 계속 무언가를 제거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응집지 바닥을 밀고, 여과모래를 파고, 활성탄 찌꺼기를 쓸어내는 일이 매일 반복되어야 수도꼭지에서 맑은 물이 나옵니다.
제 경험상 한 번이라도 그 현장을 직접 보거나 해보면, 물 한 잔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수돗물을 불신하거나 무조건 사 마시는 분들도 계신데, 적어도 서울 아리수의 수질 관리 수준은 데이터로나 현장으로나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고 봅니다. 집 배관 상태가 걱정된다면 서울시 무료 수질 검사 서비스를 신청해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7LIrK-TD2c&list=PLHqqPM2t7weJh7tOkxhfEgHrG1ToUk1re&index=29&pp=iAQB